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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 최고전략책임자(CSO) · 오늘의 전략 칼럼

채용이 멈춘 성장: 로펌은 사람 대신 무엇에 투자하는가

매출은 급증했는데 신입 변호사 채용은 4년째 정체된 현상의 이면에는, 인원이 아니라 검증된 지식 인프라로 자본이 이동하는 더 큰 재편이 있습니다.

초록 최근 미국 로펌 시장에서 흥미로운 탈동조화가 관측됩니다. AmLaw 200 로펌들의 매출은 최근 몇 년간 크게 성장했지만, 신입 변호사(엔트리 레벨) 채용 규모는 사실상 정체돼 있습니다. 반면 경력직 이직(래터럴) 채용은 꾸준히 늘어 처음으로 신입 채용 규모를 넘어섰습니다. 이 글은 이 현상을 'AI가 신입을 대체한다'는 단선적 서사로 설명하는 대신, 로펌의 자본이 '인원'에서 '검증된 지식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는 더 구조적인 가설을 제시합니다.

숫자만 보면 이상합니다. 미국 AmLaw 200 로펌들은 최근 몇 년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로스쿨을 갓 졸업한 신입 변호사 채용 규모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성장하는 시장은 통상 더 많은 신입 인력을 요구합니다. 엔진을 돌리려면 연료가 필요하듯, 사건이 늘면 그 사건을 처리할 손이 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그림이 나타났습니다. 같은 기간 경력직 이직, 즉 다른 로펌에서 이미 훈련된 변호사를 데려오는 '래터럴' 채용은 계속 늘어 2025년에는 처음으로 신입 채용 규모를 넘어섰습니다. 가장 손쉬운 설명은 'AI가 신입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설명은 정말 정확할까요, 아니면 더 편리한 이야기일 뿐일까요.

핵심 개념 정의

엔트리 레벨 채용

로스쿨을 졸업하고 처음 로펌에 합류하는 신입 변호사 채용을 말합니다. 통상 리서치·초안 작성 등 기초 업무를 맡으며 훈련을 병행합니다.

래터럴 채용

다른 로펌에서 이미 실무 경험을 쌓은 경력직 변호사를 스카우트하는 채용 방식입니다. 즉시 투입 가능한 실무 능력을 갖췄지만 그만큼 인건비가 높습니다.

AI 지식 인프라(Knowledge Bank)

로펌이 축적한 판례·계약서·자문 이력 등 방대한 내부 문서를 AI가 신뢰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색인해, 생성형 AI가 검증된 자료만 근거로 답변하도록 구축한 시스템입니다.

그라운딩(Grounding)

AI가 답변을 생성할 때 검증되지 않은 내부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확인된 문서·자료를 근거로 삼도록 강제하는 기법입니다. 할루시네이션(환각)을 줄이는 핵심 장치입니다.

전략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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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동조화: 성장하는 매출, 정체된 신입 채용

리걸테크 매체 아티피셜로이어가 SurePoint의 로스쿨 채용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AmLaw 200 로펌의 신입 변호사 채용 규모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사실상 정체되거나 소폭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AmLaw 200은 누적으로 상당한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고 추정됩니다. 통상적인 인력 수요 모델에서는 매출이 늘면 그 업무를 처리할 인력, 특히 기초 업무를 담당하는 신입 인력의 수요도 함께 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기간 신입 채용은 정체된 반면 경력직 래터럴 채용은 계속 늘어, 2025년에는 처음으로 래터럴이 신입 채용 규모를 앞질렀습니다. 이는 로펌이 성장에 필요한 인력을 '새로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훈련된 인력을 사오는' 방식으로 조달하고 있다는 신호이며, 이 자체가 인력 조달 전략의 구조적 변화를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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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쉬운 설명: 'AI가 신입을 대체한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직관적인 서사는 'AI가 신입 변호사의 업무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신입이 주로 맡던 판례 조사·초안 작성 같은 업무는 생성형 AI가 상당 부분 보조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이 서사에는 두 가지 허점이 있습니다. 첫째, 신입 채용 정체 추세는 리걸 AI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이전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티피셜로이어 자체도 이 현상의 원인을 AI 하나로 단정하지 않고, 클라이언트가 저경력 변호사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데 점점 더 신중해진 점, 로펌이 수익성을 위해 즉시 고액 청구가 가능한 경력직을 선호하는 점, 일부 클라이언트가 인하우스 법무팀을 키워 기초 업무를 내재화하는 점 등 복합적인 요인을 함께 지목합니다. 즉 AI는 이 재편을 가속하는 요인 중 하나일 뿐, 유일한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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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편: 인원에서 지식 인프라로 이동하는 자본

같은 시기에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매직서클 로펌 클리포드챈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에피크 어드바이저리와 함께 자체 AI 지식관리 플랫폼을 출범시켰습니다. 이 플랫폼은 로펌이 수십 년간 축적한 40만 건이 넘는 내부 문서를 재분류하고 요약해, 생성형 AI 도구가 검증된 신뢰 자료만을 근거로 답변하도록 구축됐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는 단순한 챗봇 도입이 아니라, 로펌의 자본이 '더 많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에서 '이미 보유한 지식을 AI가 신뢰할 수 있는 형태로 정비하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신입 변호사가 줄어든 자리를, 경력직 채용과 함께 이 지식 인프라가 채우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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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계층은 병목이자 새로운 해자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발생합니다. 40만 건의 문서를 AI가 신뢰할 수 있는 형태로 큐레이션하는 작업 자체는 결코 자동화하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문서가 최신이고 정확한지, 어떤 자문 이력이 여전히 유효한 법리를 담고 있는지를 가려내는 작업에는 상당한 전문성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즉 'AI가 무엇을 대체하는가'라는 질문보다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근거로 답하는가'라는 질문이며, 그 근거를 검증하고 유지하는 계층이야말로 쉽게 복제되지 않는 진짜 경쟁우위가 됩니다. 이는 법마디 OS가 처음부터 견지해 온 원칙과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어떤 생성형 모델을 쓰는지보다, 그 모델이 근거로 삼는 검증 자산과 그라운딩 계층이 답변 품질을 결정한다는 대명제가 로펌 시장에서도 그대로 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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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변호사의 재정의: 리서치 수행자에서 검증의 감독자로

이 재편이 시사하는 신입 변호사의 미래상은 '사라짐'이 아니라 '역할의 이동'에 가깝습니다. 신입이 맡던 기초 리서치와 초안 작성 업무의 상당 부분을 AI 지식 인프라가 대신 처리하게 되면, 신입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얼마나 빨리 조사할 수 있는가'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AI의 결과물을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로 이동합니다. 이는 신입 변호사의 채용 규모 자체를 반드시 줄이는 방향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지만, 채용된 신입에게 요구되는 훈련 방식과 속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검증된 지식 인프라가 잘 갖춰진 조직일수록 신입이 더 빠르게 실전 판단 능력을 훈련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지식 인프라 투자와 인력 양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전략으로 봐야 합니다.

반론과 재반박

예상 반론 그렇다면 결국 로펌은 신입 변호사를 아예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것 아닌가? 지식 인프라와 경력직 채용만으로 충분하다면, 신입 채용은 장기적으로 소멸하는 흐름 아닌가.

재반박 이 반론은 '정체'와 '소멸'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보도된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신입 채용의 붕괴가 아니라 수년간의 완만한 정체이며, 여전히 매년 수천 명 규모의 신입이 AmLaw 200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티피셜로이어가 지적하듯 이 현상의 원인은 AI만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비용 민감도, 로펌의 수익구조, 인하우스화 등 복합적입니다. 무엇보다 지식 인프라는 신입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신입의 훈련 곡선을 단축시키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검증된 지식 기반 위에서 판단력을 기르는 신입은, 오히려 그 인프라가 없는 조직의 신입보다 더 빠르게 전력화될 수 있습니다. 즉 지식 인프라 투자는 인력 투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력 투자의 효율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수입니다.

법마디 OS가 그리는 미래

머지않아 법률 조직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기준은 변호사 1인당 처리 건수가 아니라, 그 조직이 보유한 검증된 지식 자산의 규모와 신선도가 될 것입니다. 신입 변호사는 사라지는 대신, 검증된 지식 인프라 위에서 훨씬 빠르게 판단력을 훈련받는 존재로 재정의될 것입니다. 이 흐름에서 진짜 승자는 가장 화려한 AI 모델을 쓰는 조직이 아니라, 가장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근거 자료 위에서 AI를 작동시키는 조직입니다. 법마디 OS가 처음부터 검증 계층을 해자로 설계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는 로펌뿐 아니라 모든 법률 AI 서비스가 결국 마주하게 될 질문입니다.

전략적 함의

"채용 공고의 숫자만 보고 이 변화를 'AI가 일자리를 줄인다'는 단순한 이야기로 읽으면, 정작 중요한 재편을 놓치게 됩니다. 진짜 질문은 사람이 몇 명 줄었는가가 아니라, 그 자리를 무엇이 채우고 있는가입니다."

참고 자료

칼럼니스트

서연

서연

최고전략책임자 (CSO · Chief Strategy Officer)

미국 연방대법원 로클럭 출신급 / 글로벌 Top3 전략 컨설팅 파트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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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법마디 OS 전략팀의 관점이며, 투자 권유나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